해파리와 돌고래
1) 해파리
그러니까 정한도 살다살다 다 큰 성인 남성의 별명이 해파리가 될 것이라고는 단 한 차례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월화수목금 주 5일. 저녁 8시 수영. 1회 50분. 6시 땡 칼퇴를 해서 집에 가도 쉴 시간이 부족한데 그 저녁에 운동을 간다고. 그것도 주말 빼고 매일? 미치지 않고서야. 윤정한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선택이었다. 이건 그야말로 워라밸의 파괴 아닌가. 워크, 그럼 그 다음 라이프는 어디로 가는 건데. 얼마 되지도 않는 그 귀중한 시간을 굳이 수영 하는데 쓰고 싶진 않았으므로.
하지만 이제 정한의 생각은 중요치 않다. 윤정한은 꼼짝없이 수영을 다니게 될 것이다.
“내가 이미 끊었걸랑. 형 카드로.”
뭐? 사건의 발단은 애인인 주원이 같이 저녁 수영을 등록하자고 한 데 있다. 정한은 당연히 거절했고, 주원은 당연히 포기하지 않았다. 주원아 미쳤니… 남의 카드로 결제를 왜 해. 정한이 조금 퀭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안 하면 형 또 안 할 테니까. 정한은 콧노래를 부르며 수영복이나 검색하고 있는 주원을 그냥 패버리고 싶단 생각을 한다. 저 웬수가… 할 거면 혼자 할 것이지.
“아니야… 환불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주원아!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왜 자꾸 자기 여가 생활에 날 끌어들이고 싶어서 안달이야. 주원이 같이 하자고 해놓고 낼름 발 뺀 게 지금껏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골프, 베이킹, 테니스, 서양화, 조각… 집안에는 ‘모든 건 장비빨’이라는 주원의 신조에 따라 사용한지 한 달도 안 된 물품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당장 중고 시장에 내놓으면 못해도 몇십, 잘하면 몇 백까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원아… 제발… 잔뜩 피곤해진 정한이 제 눈가를 매만지며 중얼거린다. 그래봤자 주원은 속없이 해맑기만 했다.
“내가 형 수영복까지 샀어.”
말이 안 통하는구나. 절로 정신이 아찔해져 왔다. 정한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했다. 헤어질까… 저녁 운동을 가느니… 이제는 진짜 그래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결국 다음날 정한은 주원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퇴근 후 동네 체육 센터로 향했다. 아… 내가 왜 이런 짓을. 그것도 하필 수영이라는 민망한 스포츠를. 새로 발급 받은 회원 카드를 내밀고 사물함 키를 받아들면서도 여전히 정신이 멍했다. 끝나면 여덟 시 오십 분… 씻고… 집 가면 아홉 시 반 되려나… 내일 일곱 시에는 일어나야 하니까… 머릿속에서는 어떻게든 그 사이 쉴 궁리 뿐이었다.
“형 수영 배워본 적 있어?”
“빨리도 물어보네… 없어. 나 초짜야.”
“그럴 줄 알았어. 형은 1 레일 초급반 가면 돼. 나는 3 레일 중급반.”
“뭐야. 너 수영할 줄 알아?”
“응, 어릴 때 대충 배웠거든.”
같은 반에서 배울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같이 가자고 한 거야… 수영복을 갈아입으며 정한은 더더욱 황망해진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집에서 나를 기다릴 오늘자 축구 경기와 안락한 소파는 어디로… 시작도 안 했는데 몸에서 힘이 쭉쭉 빠졌다. 연하 애인이란 원래 이렇게 통통 튀는 건가? 아님 요즘 내가 너무 기력이 딸리나? 주원을 만난지 1년 가까이 다 된 지금에도 여전히 모를 일이었다.
삑삑 삑삑 삐빅 삐빅—
박자에 맞춰 들리는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 일렬로 서 있는 사람들이 단체로 몸을 움직였다. 정한은 준비 운동을 꼼꼼히 해야 쥐가 안 난다는 주원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목을 꺾었다. 설렁설렁 손목 발목을 돌리고 팔 벌려 뛰기를 하는 와중에도 드는 생각은 <집에 가고 싶다…> 오직 그거 하나 뿐이었다.
저녁 시간대의 회원 연령은 다양했다. 주로 정한과 같은 직장인들. 그렇지만 학교와 학원을 끝마치고 온 학생들과 수영장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어머님들도 눈에 띄었다. 팔랑팔랑 3 레일로 떠나는 주원을 보며 정한은 터덜터덜 초급반으로 향했다.
“네, 안녕하세요~ 출석 부를게요.”
1 레일 담당 강사가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회원들의 이름을 하나 둘 호명했다. 발성 대박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웅웅 시끄러운 수영장의 공기를 뚫고 들어오는 또렷한 목소리. 이 정도 발성이면 물 속에서도 들리겠네. 정한이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이었다.
“정한 회원님?”
“아, 네. 저요.”
“오늘 처음 오셨구나!”
“네에…”
정한이 가볍게 손을 들며 답하자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어머~ 잘생긴 총각이 새로 들어왔어!”
“아하하 감사합니다.”
“우리 돌고래 쌤 긴장해야겠는데?”
돌고래? 그 말에 대화를 듣고 있던 수영 강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 왜 그러세요. 긴장은 무슨. 우리 회원님이 훨씬 잘생겼구만. 돌고래라고 불린 강사는 넉살 좋게 받아치면서 마저 출석을 부른다. 정한은 거기다 대고 별다른 반응도 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웃었다. 성격 좋군… 환한 얼굴의 수영 강사에 대한 심심한 첫인상이었다.
수영의 기본 : 발차기
수영장 물을 텀벙거리며 정한은 생각한다. 먹을 만큼 나이 먹고 수영을 배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용감하구나. 본인이 조금 덜 용감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든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영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하루 종일 발차기만 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1 레일 옆에 있는 낮은 어린이용 풀장에서 말이다. 무릎 정도까지 밖에 안 오는 물에서 발차기라니… 충격적으로 모양새가 없어 보였다.
“정한 회원님! 이제 이쪽 와서 연습합시다!”
20분간 물만 차던 정한은 이때다 싶어서 벌떡 일어났다. 자기를 부르는 강사의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기왕 수영을 할 거라면 그래도 깊은 곳에서 하고 싶었다.
“회원님, 근데 여기서 하려면 일단 물에 뜨셔야 해요.”
“못 뜨겠는데역.”
그렇지만 이건 정말 상상도 못한 그림인데… 내가 이렇게 운동신경이 없었던가? 정한이 맛없는 수영장 물 마시며 생각했다. 아닌데. 체력이 후달려서 그렇지 뭐든 그럭저럭 잘 해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 생각을 하는 중에도 정한의 몸은 수영장 바닥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저기요. 사람 몸은 원래 물에 뜬다면서요. 부력의 원리가 나한테만 적용 안 될 리도 없고 진짜.
꼬르르륵.
“회원님!!”
수영 강사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선생님, 제가 오늘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그 머머리 과장한테 시달리느라 내가 하루종일… 근데도 이 시간에 애인이 하고 싶은 거 따라와서… 물에 뜨는 연습이나 하고 있고… 제 워라밸은 어디 갔나요? 저 정말 집에 가고 싶어요…
“읏차! 아이고 회원님, 정신 차리셔야 해요.”
그때 돌고래가 무 뽑듯 정한을 물에서 건져내서 일으켜 세웠다. 와씨 정신이 번쩍 드네. 정한이 고개를 탈탈 털며 눈을 바로 떴다.
“힘 좋으시네요… 감사합니다…”
정한이 헤롱대며 중얼거리자 돌고래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촤하핫 하고 웃었다.
“아이고 별 말씀을요. 자, 이제 힘내셔야 해요?”
예에… 힘. 힘내자… 힘내… 이겨내… 정한이 강사의 제스처를 흉내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쿨럭대는 와중에 입에서 수영장 락스물 맛이 났다.
50분이 다 되자 강습을 종료하고 다같이 손을 마주 잡고 섰다. 끝날 때가 되니 다들 모여 신나게 농담 하기 바빴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지친 사람은 어쩐지 정한 하나인 것 같아 보였다.
“우리 총각은 움직임이 뭐 이렇게 흐물흐물해 젊은 사람이.”
“이건 뭐 해파리여, 해파리!”
와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하. 정한도 힘없이 따라 웃었다. 어머님들 기력도 좋으시지…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별명이 정해지는 거였구나. 저쪽은 돌고래, 나는 해파리. 아무래도 수영 잘해서 돌고래겠지. 나는 흐느적거려서 해파리인 거고. 치욕스럽단 생각을 하기엔 이미 바짝 피곤했다.
“아이고 어머님들. 우리 신규 회원 그만 놀리시고!”
자꾸 괴롭혀서 그만두면 어떡해요. 돌고래로 불리는 강사가 상황을 갈무리 하며 마무리 멘트를 이었다. 이제 막 한 주 시작해서 다들 피곤하실 텐데 월요일부터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기운 그대로 이번 주 다같이 힘내시고 파이팅 합시다. 자, 하나 둘 셋!
“파이팅!”
별안간 맞잡은 두 손이 번쩍 들린 정한은 뒤늦게 파이팅을 외치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수고 하셨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함께 수업을 들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샤워장으로 향했다. 비슷한 타이밍에 강습을 마친 주원이 달려와 어깨를 감쌌다. 어땠어? 재밌었어? 정한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수영모를 벗었다. 재미는 아직 모르겠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쾌활한 목소리의 수영 강사는 아직도 물 안에서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쨍한 목소리가 수영장 안을 울렸다. 정한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을 닦아낸다. 그냥 뭐…
“인상적이었어.”
그 후로 약 2주간 정한은 매일같이 주원에게 이끌려 수영장으로 향했다. 아니 끊어도 무슨 주 5일을 끊어놨어. 월수금 3일만 해도 힘들 것 같은데. 정한은 죽겠다는 얼굴로 운동을 갔다. 수영 자체가 나쁘지는 않았다. 끝나고 샤워도 할 수 있고, 운동한 뒤 노곤한 몸으로 잠들면 푹 잘 수 있으니까. 개운하기야 개운했는데.
“그래도 이게 모양새가 참…”
등에 거북이 등판 달고 손에는 형광색 킥판 잡은 윤정한은 현재 수치스러움으로 사망 직전이다. 주원아 너는 중급반이니까 영법도 거의 다 할 줄 알고 참 좋겠다. 근데 형은. 근데 형은 말이야. 물에 뜨지를 못해. 나이 서른이 다 돼서 등에다 이런 거 매달고 하고 싶겠니 수영을. 형 입장이라는 건 생각 안 해주니. 형도 최소한의 가오라는 게 있지.
“해파리 총각 거북이 됐네.”
그런 정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님들의 끝도 없는 놀림에 같이 수영하는 학생 몇이 쿡쿡 웃었다. 여기 혹시 바다인가요? 돌고래에 해파리에 이제는 거북이? 네모난 수영장 안에 해양생물이 대체 몇인가요? 울고 싶은 정한 편을 들어주는 건 돌고래 씨 뿐이었다.
“아 왜 자꾸 놀려? 다들 거북이 졸업 하신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세요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한은 너무나도 감사했지만 그런 만큼 창피했다… 구김 없이 매끈한 돌고래 씨 앞에서 해파리 씨 혼자 흐물텅대느라 고달픈 탓이었다.
2주가 지나자 주원의 의욕은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 주원이 독촉하지 않으니 당연히 정한도 해이해졌다. 일이 바쁘기도 했다. 내일은 가야지. 내일은… 그러다 보니 일주일을 통으로 빠지는 주도 있었다. 두 명 다 내 카드로 긁었는데…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집에 오고 나면 차마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피 같은 내 돈으로 돌고래 배만 불리고 있군.
근데 그렇게 가기 싫다가도 주말만 되면 수영이 하고 싶어졌다. 흠. 월요일엔 갈까? 하지만 월요일이 오면 또 월요병이 도졌다.
수영을 자꾸 빠지니 일상에 개운함이 덜했다. 운동은 가면 좋은데 왜 이렇게 가기가 싫냐… 정말이지 아리송한 부분이었다. 아… 죽도록 가기 싫다. 정한은 소파에 머리 박고 괴성을 지르다가 결국 눈 딱 감고 그날 수영을 갔다. 어떤 돌고래 배만 불리느니 나도 거북이 탈출 할란다. 그냥 그런 마음이었다.
“요즘 바쁘세요?”
아… 죄책감. 눈을 못 마주치겠네. 정한은 눈을 마주치는 대신 돌고래 씨의 귀 언저리에 있는 피어싱을 바라보며 답했다. 일이 많다 보니까요. 아주 거짓말도 아닌데 양심에 찔렸다. 아쉽다는 얼굴 하지 마세요 선생님. 제가 너무 미안해지잖아요.
“같이 나오시던 친구 분은 요즘 안 나오시는 것 같던데.”
“아 주원이… 걔도 바빠가지고…”
거기서부터는 진짜로 양심에 찔리기 시작했다. 사실 정한은 그렇다 치더라도 딱히 주원이 바쁠 일은 없었다. 주원은 날백수였고 고로 시간이 넘쳐났으니까.
“원래 등록 해놓고 보름 넘어가면 많이들 안 나오세요. 봐요, 널널해졌잖아요.”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그랬다. 주원에게 듣기론 분명 등록할 땐 빡셌다고 했는데 다들 끊어만 놓는 거였나.
“그래도 아주 그만두지 않고 회원님처럼 계속 나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돌고래 씨는 정말 쓸데없이 착한 젊은이였다. 정한은 양심통으로 욱신거리는 가슴팍을 부여잡고 말했다.
“저 더 열심히 할게요 선생님. 거북이도 졸업하고요.”
그 말에 수영 강사는 환하게 웃었다. 정말이지 미안할 정도로 기쁜 낯으로.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주 이후로 정한은 수영을 가지 않았다.
“형 우리 헤어지자.”
수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 정한을 가장 먼저 맞이한 건 주원과의 이별이었다. 정한은 아직 덜 마른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내며 뻐근한 어깨를 쓸었다. 그 말을 듣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이 ‘아 이제 수영 그만 다녀도 되겠다’ 였다는 점에서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씁쓸하게도 ‘결국 이렇게 되는군’ 이었다. 주원의 말이 놀랍진 않았다. 2주에 한 번씩 취미를 바꾸는 애가 1년이나 자기를 만난 게 놀라울 지경이었으니까. 커다란 불화는 없지만,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 주원도 정한도 서로에게 미래를 기대하지 않았고, 그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서로가 잘 알았다.
“그리고 나 유학 가려고.”
“유학?”
“응, 당분간은 한국에 없을 거야.”
너는 끝까지 욜로 인생이로구나… 앞으로 얼굴 볼 일 없게 됐는데도 그 사실이 그렇게 슬프지 않다는 점에서 죄책감이 들었다. 둘의 관계보다 수영 생각을 먼저 한 것도. 그래서 정한은 그냥 ‘그래’ 한 마디 하고 말았다. 그동안 고마웠어. 그래 나도. 늘 몸 잘 챙기고. 응. 그게 다였다. 못 해준 게 너무 많아서 미안해. 둘 중 아무도 그런 소리는 안 했다. 1년이라는 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심한 마무리. 주원이 짐을 싸고 떠난 뒤 집 청소를 하던 정한은 집안을 쓸고 닦으며 주원에 대한 애매한 죄책감을 털어냈다. 그러다 방 한구석에 있는 수영 용품을 정리할 때는 돌고래 씨를 떠올렸다. 이별의 상황에서 이렇게나 무던한 자기가, 그간 제 돈 버려가며 수영 좀 못 간 것 가지고 그 수영 강사한테 그렇게 미안했다는 게. 그게 정말이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리님 요즘은 수영 안 다니세요?”
“수영이요?”
“네. 한동안 수영 가방 들고 출근 하셨잖아요.”
커피를 홀짝이던 정한이 가볍게 사레에 들린다. 아 다 보셨구나. 그럼요, 장안의 화제였는데. 뭘 장안의 화제까지야… 정한은 수진이 건네주는 휴지로 입가를 닦으며 민망한 듯 웃었다.
“오전 내내 이렇게 너구리처럼 수경 자국 얼굴에 나가지고는.”
“와, 그것도 다 보였어요?”
“이마에 모자 자국도 언뜻 보이고.”
“헉…”
“암튼 아쉬워요. 진짜 웃겼는데.”
수진으로부터 날아오는 악의 없는 비수들에 정한은 창피하고 웃겨서 커피에 코 박고 싶었다. 다들 몰래 나 웃겨 하는 줄은 몰랐네. 그러거나 말거나 수진은 해맑게 말을 잇는다. 대놓고 웃겨 했는데 대리님이 눈치 못 채신 거 아닐까요? 요 며칠 정신 없으셨잖아요. 정한은 어딘가 익숙한 해맑음이란 생각을 하면서 들고 있던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가 그렇게 경황이 없었나…”
주원과 헤어진 뒤로 연달아 야근을 좀 하긴 했었다. 그러다 보니 수영도 못 가고. 안 간 건지 못 간 건지는 구분이 잘 되지 않았지만. 애초에 수영 가방을 안 들고 출근 했으니 갈 마음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뒤늦게 들 뿐이었다.
“수영 다니시는 거 좋아 보였는데 말이야…”
“정말요? 난 피곤해서 죽을 뻔했는데.”
“에이… 그 전이 더 했을 걸요? 맨날 퀭…해가지고. 오히려 수영 잠깐 다니던 때는 얼굴이 맨질맨질 했어요.”
“허허. 오늘 나에 대한 수진 씨 생각 새롭게 많이 알아가네.”
농담이라는 수진의 말을 뒤로 하고 정한이 생각한다. 오늘은 수영을 가볼까? 퇴근을 좀 일찍 해서 집을 들렀다 가면… 그때 타이밍 좋게 체육 센터로부터 문자가 왔다. 수영 재등록 기간이라는 연락이었다.
오늘은 정말 가려고 했단 말이지… 버스에서 내린 정한이 황망한 얼굴로 체육 센터를 바라봤다. 현재 시각 오후 9시 40분. 8시 수영은 커녕 마지막 9시 수영도 다 끝나갈 무렵이었다. 회식 중간에 겨우 빠져나와서 급히 왔는데도 시간이 간당간당 했다. 10시에 문 닫기 전에 빨리 등록해야겠다. 정한은 체육 센터의 문을 열고 부랴부랴 데스크로 향했다.
“저 수영 재등록 하려고…”
“저 카드키…”
어. 웬 남자와 동시에 말을 꺼낸 바람에 눈이 마주쳤다. 이 사람 어디서 봤더라? 정한은 약한 술기운에 알딸딸한 정신을 부여잡고 상대를 살폈다. 누구지? 상대도 비슷한 처지였는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는 시간이 약 5초 가량 더 이어졌다.
“정한 회원님?”
아. 돌고래구나. 목소리를 들으니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익숙한 자리에 박혀 있는 피어싱이 금세 눈에 들어왔다. 습기가 없는 공간에서 듣는 목소리는 그 전보다 한층 더 또렷하게 들렸다.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우와, 몰라뵀어요. 밖에서 뵌 건 처음이어가지고.”
그렇죠. 아무래도 우리는 옷도 안 입고 머리카락도 없는 상태에서 봐 왔으니까요. 정한은 그 말을 하는 대신 그러게요, 하고 답하며 웃었다. 둘이 인사를 하는 사이 손 빠른 데스크 직원은 돌고래 씨의 카드키를 가져다 카드로 바꾸어 줬다.
[이도겸]
회원 카드에 적힌 이름을 보고 나서야 정한은 그제서야 돌고래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렇구나… 발음이 비슷하구나… 다 뜻이 있는 별명이었구나… 근데 그것도 그건데 수영 강사도 회원 카드를 쓸 줄이야… 신기하군. 취기가 올라와서 그런지 생각은 헛돌고 말이 곧장 나오지 않았다. 그때 퇴근이 고픈 데스크 직원이 물었다.
“등록 하신다고요?”
“아 네. 잠시만요.”
정한은 반가워하는 돌고래 씨를 뒤로 하고 급하게 지갑을 꺼내 다음 달 치 저녁 수영을 결제했다. 당연하게도 한 명 분이었다.
2) 돌고래
도겸은 데스크에 기대고 서서 결제를 하고 있는 정한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미지가 되게 다르다… 살짝 풀린 넥타이에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서류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 누가 봐도 티피컬한 직장인이었다. 뭐랄까 한층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 아냐, 이렇게 말하면 좀 부정적이지. 성숙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 그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정한은 수영장에서보다 밖에서 한참 더 어른 같아 보였다. 생년월일이 적힌 출석부가 있으니 저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이야 알았지만… 그 외의 모습을 알게 되는 건 그보다 한참 더 신기한 일이니까. 수영장 밖에서의 일상. 물이 아닌 땅 위를 걸으며 바짝 마른 채로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또…
“아. 안경.”
도겸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한의 콧잔등에는 동그란 테의 안경이 걸쳐져 있었다. 처음에 못 알아본 건 안경으로 인해 조금 달라 보이는 인상 탓도 컸다.
수영장에 있을 때는 정한의 눈만 보였다. 8시 20분. 강습 도중 그 시간만 되면 도겸은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러고 나서 제 눈앞에 있는 정한을 보면 눈꼬리가 꼭 그랬다. 8시 20분. 퀭한 눈가. 약간은 울상인 듯 지친 눈빛 같은 것들. 그럼에도 몸은 열심히 움직이던. 물안경을 써도 그 안에 그렇게 존재할 눈매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났다.
“선생님 저는 왜 물에 안 뜰까요.”
약간은 투정 어린 말투와 곧장 이어지는 한숨. 그러게요… 좀 근육질이신 분들이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우리 회원님은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그렇게 말하면 둘 사이에서 맥없이 터지던 웃음. 하지만 그로부터 정한은 한참 나오지 않았고, 도겸이 8시 20분이 될 때마다 쳐다볼 얼굴 같은 것도 한동안 부재한 상태였다.
결제를 마치고 문 쪽으로 걸어오는 정한을 도겸이 문손잡이를 쥔 채로 맞았다. 정한은 까딱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물었다.
“퇴근하시는 거예요?”
“아 네. 8시 레슨 끝나면 회원님들 빠질 때까지 좀 더 기다렸다가 정리하고 9시 반쯤 퇴근합니다.”
“어쩐지… 그래서 못 마주쳤구나.”
“마주치는 거 어색해 하시는 분들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늦게 가요.”
자발적 야근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정한은 새삼 대단한 체력이라고 생각하며 눈앞의 도겸을 봤다. 살짝 젖은 머리 끝이 약하게 곱슬거렸다. 곧고 깔끔한 인상. 건조함이라고는 없는 것 같은 매끈한 피부. 반바지에 스니커즈. 목 끝까지 채워 입은 바람막이. 수영 가방을 어깨에 맨 모습이 꼭 학생 같았다. 여유롭고 넉살 좋은 모습만 봐서 그렇지 생각보다 어리구나. 머리카락 한 올 없이 수영모를 쓴 모습만 보다가 육지에서의 돌고래 씨를 보고 있자니 별안간 이질감이 들었다.
“회식 하셨어요?”
“네? 아아 얼굴 좀 빨갛죠. 네에… 어쩌다 보니…”
정한이 발그레한 제 볼을 손등으로 찍어 누르며 옅게 웃었다. 취하긴 취했는지 반응 속도가 0.5초씩 느렸다.
“많이 바쁘신가 봐요.”
“아이 아닙니다… 열심히 나왔어야 했는데 제가 죄송해요.”
“아, 사과 하시라고 꺼낸 말 아니에요! 괜한 부담을… 제가 죄송해요. 안 그래도 바쁘실 텐데.”
하하. 정한이 나직이 웃었다. 바쁘죠 바쁜데… 그래도 앞으로는 수영 열심히 다니려구요.
“생각보다 자주 생각나더라고요.”
정한이 도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귀에 박혀있는 피어싱 말고. 그 눈동자를. 술기운 때문인가? 한참을 빤히 보는데도 이상하게 눈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차마 들지 않았다. 도겸도 그런 정한을 빤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엇갈리지 않는 시선 속에서 정한이 중얼거린다. 진짜 이상하지 않나요, 돌… 아니 도겸 씨.
그렇게 가기 싫어해 놓고 자꾸 떠오른다는 게.
이후 정한은 전에 없이 성실하게 수영 강습에 임했다. 어머 해파리 총각! 왤케 안 왔어. 다시 보니 참 좋다! 살짝 귀가 따가운 환영과 함께였다. 그 말들이 이상하게 싫지가 않아서 정한은 그냥 웃었다.
“앞으로는 안 빠지고 나올 거예요.”
그리고 그 말대로 매일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출석 도장을 찍었다. 꾸준히 나오다 보니 실력은 금방 늘었다. 거북이도 금세 졸업하고 하나 둘 영법을 익혀가자 본격적으로 재미가 붙었다. 그래, 나 운동 신경 나쁜 편 아니라니깐. 부력의 원리가 나만 비껴갈 리가. 물을 가르고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걸 경험하는 일은 생각보다 유쾌했다. 매일같이 반복하다 보니 호흡하는 법도 익숙해져 전처럼 물을 많이 먹지도 않았다.
“대리님 다시 판다 되셨네요.”
“언제는 너구리라더니…”
“그게 그거죠.”
정한은 눈가 여린 살에 남은 자국을 매만지며 모니터에 비친 제 얼굴을 들여다봤다. 이거 자국이 안 남게 할 수는 없는 건가? 바보같이 이게 뭐람… 책상 옆에는 서류 가방과 나란히 파란색 수영 가방이 놓여 있었다. 재등록한 다음날 괜찮은 걸로 새로 산 가방이었다. 물안경에 김이 서리지 않도록 안티 포그액까지 산 정한에게 모든 건 장비빨이라는 어떤 신조가 떠오른다. 다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닮아가는 지점이 있단 게 씁쓸했다.
“근데 친구 분은 안 나오세요?”
그치만 이후에는 그런 질문에도 오래 망설이지 않고 답할 수 있었다.
“외국 갔어요. 같이 다니자고 해놓고 그렇게 됐네요. 그래도 그 친구 덕에 제가 수영도 다니고 하니까… 고맙고 그래요.”
대답을 마친 정한은 지난 몇 주를 떠올리며 물 안으로 고개를 숙인다.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공기 방울들. 너무 멀쩡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렇지 않다고 하기에는 나도 시간이 필요했구나. 숨을 내쉬고 다시 들이마시고. 주원은 잘 지내고 있을 거였다. 어디에 있든 잘 지내는 애니까.
그러니까 정한도 잘 지내야 했다. 몸 잘 챙기고. 자기가 그렇게 말했었으니까. 이제는 정말 그래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엥. 근데 나 지금 왜 이러고 있지. 금요일 밤 10시. 왁자지껄한 술판 한가운데서 정한이 생각한다. 여긴 어디. 난 누구. 마셔~! 마시고 죽어~! 껄껄껄. 깔깔깔. 호탕한 웃음소리들이 귓가를 때렸다. 어우 어지러워 뭐야. 차마 빼지도 못하고 연신 술을 들이킨 상태라 정신이 흐렸다. 아 맞다 나 지금 회식 왔지. 주위를 둘러보니 평일 저녁 8시 수영반 전원이 자리에 둘러앉아 술을 까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사이다 한 병씩 사주고 돌려보내곤 어른들끼리 미친 듯이 달리는 광경. 건강을 위해 수영을 선택했는데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내일은 일 없지 않냐며 막무가내로 끌려온 정한은 건너편에 앉아 있는 도겸을 바라봤다. 혀가 다 꼬부라진 걸 보니 저쪽도 만만찮게 취했군. 아무래도 혼자 강사 신분이다 보니 거절도 못하고 오는 족족 술을 받아 마신 것 같았다. 돌고래 씨는 알았을까? 자발적 야근 대신 강제 회식하게 될 줄? 어머님들에게 어깨를 얻어맞으며 웃고 있는 얼굴이 온통 벌겠다.
노래해 (짝) 노래해 (짝)
그러다 또 어느새 분위기가 바뀌어선 모두가 일제히 도겸에게 노래를 시키고 있었다. 아이 왜 그러세요. 도겸은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빼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나서 소주병에 숟가락을 꽂았다.
“내가 필요할 때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와따 잘한다!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인싸력 미쳤다… 정한은 남아있는 파전 오물거리며 생각했다. 어르신들 상대로 이런 대처가 가능하다니. 정말이지 뛰어난 사회성. 회식할 때 부장님들이 정말 좋아할 인재다. 그리고 목소리를 듣고 예상한 대로 돌고래 씨는 노래를 기깔나게 잘했다. 수영 강사라 호흡법이 다른가. 그러다가 별안간 초고음을 질러대는 도겸을 보고 정한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와 돌고래… 이래서 돌고랜가? 이쯤 되니 돌고래의 의미가 정말이지 여러 개일 지도 몰랐다.
“무조건 무조건이야하~!”
눈이 마주치자 눈꼬리가 휘어지게 환히 웃는다. 참… 성격 좋아. 처음엔 적응 안 되던 분위기에 녹아들어 이제는 정한도 노래에 맞춰 박수를 쳤다.
“감솨합니닷!”
우레와 같은 환호와 박수. 와아아. 소리 잘 못 지르는 정한도 그냥 호응 한 번 보낸다. 절대 분위기 안 죽이는 도겸이 진짜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만취했다. 아니 대학 때 이후로 만취한 게 대체 언제지? 회사 회식에서도 이렇게까지 거나하게 취한 적은 없었는데… 정한이 휘청휘청 걸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같은 방향인지 그 뒤로 도겸이 비실비실 따라 들어왔다.
“오… 선생님… 이 방향이세요?”
이젠 말이 0.5초 느린 수준이 아니라 아예 0.5배속이었다. 수영 어르신들 진짜 무섭다. 사람한테 술을 이렇게 맥이네. 취하긴 취했는지 웃기지도 않은데 자꾸 웃음이 샜다.
“아… 저…. 아하하.”
여긴 더 취했나 보다. 그러는 사이 도겸이 제 몸을 못 가누고 휘청대다 정한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걸 받아내기엔 정한도 힘이 없었던 지라… 철푸덕 길바닥에 엎어지는데 억 소리 나게 아파서 술이 그냥 다 깼다. 와씨 꼬리뼈 부서진 거 아니야? 눈물이 핑 도는 와중에 도겸은 어우… 죄송…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차마 몸을 못 가누고 있었다.
“술 약해요?”
“네에… 근데 또… 버리지를 못해가지구…”
혀가 죄다 꼬여서 발음이 샜다. 헤실헤실. 뭐가 좋다고 웃으세요. 꼬리뼈를 내어주고 술 좀 깬 정신을 취한 정한이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았다. 둘은 버스 정류장 의자를 등받이로 쓰고 겨우 앉아서 숨을 내쉬었다. 푸우우. 숨에서 술 냄새 나는 것 같아서 머리가 다시 아팠다. 다음 번엔 회식 절대 안 따라가야지… 그런 다짐이나 하고 있는데 도겸이 옆에서 말을 걸었다.
“정한 회원님.”
“네에.”
“이제 안 나오시면 안돼요.”
그건 사실상 [이제에… 안 나오시며는… 안대요…]에 가까운 발음이었다.
“저 요즘 열심히 나오잖아요 쌤.”
“안 나오면… 8시 20분에 누굴 봐…”
“뭔 소리지 이건 또. 네에. 잘 나갈게요.”
땅바닥에 앉아 있던 정한은 점점 술이 깼다. 예전처럼 못 마신다 뿐이지 애초에 술이 약한 편은 아니었고, 정한은 취해도 정신이 금방 깨는 편이어서. 주변이 시끄럽지만 않으면. 그리고 야밤의 동네 버스 정류장은 정말이지 한산했다.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도겸은 그런 편과는 거리가 먼지 고개를 정한의 어깨에 박고 보고 싶었단 말만 중얼대고 있었다. 뭘 보고 싶어… 사람 오해 하기 딱 좋은 발언하네.
“앞으로도 빠지지 마세요… 약속해요…”
정한은 제게 기대오는 도겸이 내미는 약지를 빤히 바라봤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손가락 걸고 약속해 본 적은 처음 같았다. 허공에서 휘청이는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끼워 걸고 말했다.
“네 약속… 대신 선생님도 저 계속 잘 가르쳐주세요.”
“그럼요… 도장…”
도겸은 중얼거리더니 대뜸 정한의 손을 끌어다가 입술을 꾹 문댔다. 깜짝 놀란 정한이 두 눈을 끔뻑였다. 아니 진짜 큰일날 사람이네. 누가 도장을 이딴 식으로… 평소에 멀쩡한 거 생각하면 술 때문인 것 같았다. 술 먹고 돌아다니면 큰일날 사람 같다 진짜로… 거기까지 생각했는데 도겸이 또 한 번 폭탄을 날렸다.
“회원님…”
“또 왜요…”
“사실 저 집 이 방향 아니에요.”
그 말에 정한이 눈을 번쩍 떴다. 뭐라고요.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 버스는 다 끊겼다. 정한의 술기운은 밤공기 중에 퍼져서 점점 정신이 돌아오던 차. 세미 180의 건장한 수영 강사가 술에 취한 채로 꿍얼댄다. 자기 집 이 방향 아니라고. 그럼 왜 여기까지 왔어요. 저기요 돌고래 씨. 집이 어디예요. 말해봐요. 그러나 도겸은 슬슬 대답조차 어려워지는 상태로 접어든다. 환장…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은 정한은 카택 불러서 뒷좌석에 겨우 몸을 실었다. 내일 토요일이니까 괜찮겠지… 괜찮음의 주체가 어느 쪽인진 모르겠으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차에서 내리고는 쓰러지다시피 한 도겸을 질질 끌고 제 집 현관문을 열었다.
삑 삑 삑 삑. 삐리릭-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센서등에 불이 켜졌다. 자기보다 체구가 좋은 성인 남성을 들쳐엎고 부축하느라 아까 샤워한 게 무색하게 땀에 젖은 상태였다. 마지막 힘을 발휘해 도겸을 끌어다 소파 위에 던지자 늘어진 몸이 그대로 소파에 엎어졌다. 겨우 임무를 완수한 정한은 방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와씨… 술 취한 돌고래가 이렇게 무서운 생물일 줄이야… 침대까진 끌고 갈 힘도 없었을 뿐더러 침대를 양보하기엔 자기도 너무 지쳐있던 터라 별수 없었다.
“수영 열심히 안 나가서 들었던 죄책감은 이제 이걸로 퉁치는 겁니다…”
정한은 소파에 얼굴 박고 자고 있는 도겸이 숨막혀 죽지 않도록 고개를 틀어주고 겉옷과 양말을 벗겨낸 뒤 이불을 가져다 덮어줬다. 곤히 잠든 얼굴이 색색대며 옅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정한은 그 얼굴을 잠시간 빤히 봤다. 고작 자기 하나 안 나온 거 가지고 그 방향까지 따라왔다는 게 괜히 사람 마음 이상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눈을 뜬 도겸은 겁에 질렸다. 난 누구. 여긴 어디. 낯선 천장과 가구들 틈에서 불안하게 눈동자만 굴리는데 시선 한 구석에서 정한이 빵 쪼가리를 주워 먹고 있었다. 오, 선생님 하이. 안녕히 주무셨나여. 도겸은 비명을 지를 뻔한 걸 겨우 참고 중얼거렸다.
“회… 회원님 여기… 어떻게…”
“자기 집 이 방향 아니라 하구 갑자기 기절하셔서 그냥 저희 집으로 데려왔어요. 토요일에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죠?”
“네, 아니에요… 어떡… 헉… 정말 죄송합니다.”
도겸이 소파에서 후다닥 내려와 냅다 방바닥에 몸을 숙였다. 아아이 왜 이러세요. 일어나세요. 의자에 앉아 빵 먹던 정한도 자리에서 내려와 몸을 수그렸다. 남자 둘이 쌍방 맞절이나 하는 요상한 풍경이 주말 아침 정한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해장국은 제 맘대로 콩나물 국밥 시켰어요.”
“어우….. 아니 제가…”
도겸은 황송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숙취가 몰려와서 머리는 머리대로 아프고 속은 속대로 쓰린 와중에 죄송하긴 또 미친 듯이 죄송했기 때문에. 도겸은 염치를 아는 모범 시민이었다.
“평소엔 해장 뭘로 하세요?”
“어 저….”
피자요, 하고 말할 뻔한 걸 겨우 삼켜낸 도겸이 주먹을 꽉 쥐었다. 국밥이요. 국밥이죠. 그것도 콩나물 국밥. 술기운에 모범 시민 탈락 위기였다. 도겸이 거짓말 하는 것 정도야 눈치챘지만 정한도 별 말을 더 하진 않았다.
“그래요. 얼른 드세요.”
“네, 잘 먹겠습니다…”
그날의 대화로 정한은 도겸이 주원과 동갑이란 것과 수영 강사를 하게 된 지는 2년 정도 됐다는 것, 지금은 건강해도 어릴 땐 부모님 걱정 꽤나 사는 꼬마였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짜요?”
“열 달 못 채우고 나와서 그런가, 태어날 땐 폐가 작았대요.”
그리고 어릴 땐 물 무서워 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제가 수영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사람 일 모르는 거죠. 그 말에 정한은 두 눈 크게 떴다. 돌고래도 날 때부터 돌고래는 아니었다는 사실이 괜히 신기했다.
“결국 이렇게 잘하게 된 게 멋지네요.”
“에이, 그래도 전 어렸을 때부터 했잖아요. 회원님처럼 나중에 도전하시는 게 더 어렵고 멋진 일이에요.”
창피함의 연속이었던 초창기가 생각나서 정한은 웃음을 흘렸다.
“저도 그냥 그때 같이 다니던 애 때문에 억지로 시작했던 거였어요.”
숟가락을 벅벅 그릇을 긁으면서는 그런 말들이 절로 나왔다. 이제 그 친구랑은 헤어지게 됐지만… 오히려 수영이 좋아져서 운동은 계속 다녀요. 신기하죠 사람 일은… 도겸이 제 말을 이해하든 못 하든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왜지? 정말 웃기는 마음들이 도겸 앞에선 자꾸 튀어나온다는 생각을 하며.
“나중에 오리발도 하면 더 재밌을 걸요.”
“그건 더 잘해야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제가 봤을 땐 머지않았습니다… 중급반 올라가시면 바로 할 거예요.”
이제 접영까지 다 배우시면 스타트나 사이드턴 퀵턴… 이런 것들도 배우실 수 있고. 줄줄 등장하는 것들에 정한이 웃었다.
“아이고야, 아직도 배울 게 많네.”
그런데도 싫지 않았다. 물 안에서는 잡생각이 사라져서 그런가. 몸을 뻗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단 걸 매일같이 확인할 수 있는 스포츠라서 그런가. 싫어할 법한 지점이 투성이지만, 확인할 수록 좋은 것도 많은 게 수영이었다. 정한은 도겸과 함께라면 앞으로 남은 것들도 정말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정한에게 어느 날 닥쳐온 청천벽력. 다음 달부터는 초급반의 강사가 도겸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뭐라고요? 어째서 이런 일이… 제가 그런 감동적인 다짐을 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시나요. 원래 분기별로 로테이션 돈다는 소식에 정한은 속이 바짝바짝 탔다. 아니겠지. 하지만 아니긴 개뿔. 그날 수업을 마칠 즈음, 돌고래는 다음 주가 1 레일이랑은 마지막이라는 말을 전해왔다. 헐… 그 말을 듣는 정한만 절로 서러워졌다.
“어디로 가시는데요?”
“아마 이렇게 두 칸씩 움직이지 않을까요? 중급반 담당 될 것 같은데.”
학생들과 어머님들이 아쉬워하는 와중에 정한 혼자만 대놓고 아쉬워하지도 못하고 눈이 생기를 잃었다. 너와 퀵턴까지 생각했어… 같은 수영장 같은 레일에서… 같이 배워가며… 미친 듯 수영하려 했어… 한순간 물거품이 된 꿈… 슬퍼서 크라이 크라이 크라이…
“자 그래도 일주일 남았죠? 마지막까지 힘차게! 즐겁게 합시다. 하나둘셋!”
“파이팅!!”
파이티잉… 정한은 그날만큼 파이팅 못하겠는 날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터덜터덜 샤워장에 들어가 물을 트는데 어쩐지 앞으로는 수영이 재미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심란했다. 왜지. 나 수영 좋아하게 된 거 아니었나. 샤워기 물이 얼굴을 때린다. 이상하게 이 심란함이 샴푸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지 않고…
돌고래랑 하는 수영이 좋은 거였나?
그 생각을 하면서 정한은 수돗물을 잠갔다. 물기를 짜내지 못한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습기가 찬 거울을 손바닥으로 벅벅 닦아내고 그 안에 비친 제 얼굴을 들여다본다. 웃긴 물안경 자국. 어느새 사라진 다크 써클. 제 눈가를 빤히 들여다보다 갑자기 생각나는 말이 있어서 웃음이 터진다.
“와… 8시 20분…”
그 말이 한참 뒤에야 이해가 간 게 어이가 없고 웃겨서 한참을 웃게 됐다.
3) 해파리와 돌고래
흔히 알려진 사실. 해파리는 심장이 없다. 심장뿐만 아니라 위와 여러 내장 기관도 없다. 어떤 해파리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도 한다. 바닷속에는 심장이 없는 해파리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며 유유히 헤엄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헤엄치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수면을 떠돌며 생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파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헤엄치기를 택했다.
“회원님 아직 안 가셨어요?”
오후 아홉 시 반. 도겸이 퇴근할 무렵. 정한이 곧장 집으로 향했다면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정한은 그새 바짝 마른 머리를 하고는 쭈그려 앉은 채로 자기를 쳐다보는 도겸을 올려다봤다. 오늘 무슨 일 있으세요? 아직 물기가 덜 마른 도겸이 제 머리를 털어내며 묻자 정한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할 말이 있어서 기다렸어요.
“제가 반 올릴게요.”
“네?”
“도겸 씨가 안 가르쳐주면 수영 그만 둘 거임.”
“엥? 회원님 갑자기 왜 무슨 소리세요.”
“몰라요. 책임져요.”
선생님 때문에 수영의 맛을 알아버렸잖아요. 집 가서 혼맥 하면서 축구 경기 보다 잠들 수도 있는데 제가 맨날 체육 센터까지 와서 데스크에 회원증을 내밀게 됐잖아요. 수영모 쓰면 못생겨져서 싫은데 그것도 모자라서 맨날 바보 같은 물안경 자국 달고 출근하잖아요. 정한은 지금 제가 얼마나 황당하게 굴고 있는지 알면서도 멈출 줄을 몰랐다. 자기보다 어린 수영 강사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습니까? 누군가 질문한다면 존나 예스. 네, 전 그러고 싶은데요. 나이를 헛먹어서 그런가.
“이제 저 없으면 쌤은 8시 20분마다 어떡하시려고요.”
“에? 아니 제가 그런 얘기도 했어요?”
도겸의 낯이 순식간에 시뻘게진다. 어쭈 이것 봐라. 기억 하나도 못하는구만.
“제 손에 뽀뽀하면서 도장까지 찍어놓고 이러시면 제가 억울해요.”
“아니 뽀… 언제요? 그날인가? 회식 날?”
창피해서 그런 건지 설레서 그런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당황한 도겸을 보며 정한은 웃음을 흘렸다. 아 왤케 재밌지. 누구 놀리는 거 원래 이렇게 재밌었나. 생각해 보면 옛날부터 좋아했던 것도 같은데 최근 너무 환멸의 직장인으로 살다 보니 까먹은 감각 같기도 했다.
“그때 약속할 때 선생님도 앞으로 저 계속 가르쳐 준다고 했잖아요. 저는 열심히 나오는데 저만 약속을 돌려받지 못하고…”
“아아잇, 알겠어요. 제가 죄송해요!”
시무룩한 척 하는 정한을 도겸이 허둥지둥 달랬다. 근데 저도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데 어떡해요… 저 그냥 월급 받고 여기서 일하는 강사인데요… 언제 잘릴지도 모르고요… 갑자기 현실적으로 슬퍼지는 상황 속에서 정한이 석민의 손을 붙잡는다.
“그니까 제가 반 올릴게요.”
자유형 배영 평영? 이미 자신 있어요. 저 앞으로 오리발도 하고 싶고요. 그 뭐야, 스타트도 퀵턴도 배우고 싶어요. 저 접영도 곧 마스터 할 거예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가르쳐주세요.
돌고래. 왜 돌고래지? 피부가 매끈해서? 노래를 잘해서? 사회성이 뛰어나서? 아니면 그냥 순전히 어감이 비슷한 이름 때문에? 어쨌든 헤엄에 능한 이 돌고래는 매일을 떠돌기만 하던 해파리에게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영영 헤매야 할지도 모르는 이 광활한 바다에서 심장이 없는 해파리가 경험하지 못한 마음들을 떠안겨 줬다. 벅찬 호흡이 안겨주는 기쁨 같은 걸, 이제는 알 수 있으니까.
“저 책임져요.”
그런데 그 막무가내인 말이 그닥 싫지가 않아서, 도겸은 어이가 없고 골때려서 웃음이 샜다. 맞잡고 있는 손에서는 온기가 느껴졌다. 어쩌면 돌고래도 해파리가 신기했던 걸까. 죽지도 않고 바다를 떠도는 그 생물체가 알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지쳐 보이는데도 왜 포기하지 않는지, 아주 오래 전부터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알겠어요. 약속 지킬게요.”
그래서 둘은 다시 새끼손가락을 맞걸었다. 눈을 똑바로 맞추고 엄지를 맞대 도장을 찍었다. 여름밤에서는 수영장 락스 물과 은은한 샴푸향이 섞인 것 같은 냄새가 났다. 정한과 도겸은 마주 보고 미소 지었다. 그 기묘한 공기를 가르고 새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울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물들의 슬픈 진실에 관한 이야기-브룩 바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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