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는 빙글빙글 사랑의 소용돌이
Chapter 1. 셉라노 연애 조작단의 결성
"오늘 너희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심심해서다?"
"뭐야?"
윤정한의 서두에 최한솔이 받아친 말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한솔은 싸늘한 갤러리 반응을 개의치 않았다. It's OK. 원래 힙합의 길은 멀고도 고독한 것. 잠시 흐트러진 주의를 집중시키며 다시 정한이 입을 열었다.
"내가 석민이를 좋아한다."
"갑자기?"
"새삼?"
전자는 스낵랩 먹던 김민규고 후자는 떨떠름한 표정의 이지훈이었다. 애초에 윤정한이 이석민을 옆구리에 끼고 다닐 때부터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윤정한의 애착 동생은 여러 명 있고 애착 동생을 자처하는 사람은 더 많았으나, 모든 일을 그러려니 넘어가는 윤정한을 질투에 시달리게 만드는 동생은 독보적으로 이석민이었다. 모인 사람들이 새삼스럽지도 않게 귓가를 긁적이는데, 여기, 턱이 빠지기 직전의 최한솔 군. 강의 노트로 최한솔의 얼굴을 가려주는 이찬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인권 보호사다.
"와, 나 전혀 몰랐어!"
"아무래도 그렇겠지."
"야 너는, 어뜨, 어떻게 그걸 모르냐?"
말을 와다다 쏟아내는 민규에게서 명호가 엉덩이를 두어 번 옆으로 물렸다. 시끄러워. 그러거나 말거나 한솔은 벌떡 일어나 입을 가린 채로 와, 와우, 온갖 감탄사를 쏟아냈다. 부승관이 있었으면 어떻게든 최한솔을 주저 앉혔을 것이나 그는 윤정한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충격과 공포에 빠져 감탄사밖에 말할 줄 몰랐던 최한솔이 겨우 진정하고 물었다.
"뭐 그게 어떻게 된건데?"
"난… 별로 듣고 싶지 않은데."
"궁금하긴 하니까 Tell'em."
"큼."
목을 한 번 가다듬은 정한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깍지껴 얼굴 앞으로 잡았다. 타이밍에 맞추어 홍지수가 동방 불을 껐다. 윤정한의 얼굴에 불빛이 탁, 켜졌다. 저거 내가 가져온 건데. 찬이 중얼거리는 소리는 가볍게 묻혔다.
"이야기는 옛날로 올라간다."
Chapter 2. 모든 일은 소용돌이에서 시작되었다
옛나 옛날에, 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뭉게뭉게 예쁘고 무지개로 짠 다리가 놓인 천국에 한 큐피드가 살았다.
"다들 천사라고 해주니까 진짜 지가 천사인 줄 아나 봐."
"민규야. 형 얘기하잖아."
사람들을 맺어주거나 가끔은 깨뜨리기도 하는 게 업무이지만 금값이 올라서 금화살을 아껴 써야 하는 자린고비 큐피드는 오색 구름에 몸을 숨기고 인간들을 관찰하는 게 취미였다. 오늘은 뭐 재미있는 게 없을까 가만히 찾고 있는데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사람을 잘 믿고, 남이 싫다면 자기가 손해보더라도 좀 바꿔주고, 사기 당해도 허허 웃고, 단체 행동 덤터기 써도 잠깐 화나고 말고, 아무튼 가만히 두면 코 베일 것 같았다. 베이기에는 좀 높긴 한데. 와, 어떻게 저렇게 바보 같은 인간이 있을 수 있지. 큐피드 윤정한의 일과에는 바보 같은 인간 관찰하기가 추가되었다.
일은 안하니?
응, 하는 중.
전혀.
지인짜야. 하는 중이라니까.
동료 천사에게 쿠사리를 먹어도 큐피드는 그 인간을 관찰하는 걸 그만두지 않았다. 서로 사랑하는 게 좋으니까 납화살 바다에 떨궈서 잘 놀던 범고래 커플 깨뜨리고 금화살도 두어 개 쏴주고. 그냥, 보고 있으면 웃기잖아. 화살촉 끝에 금칠하다가도 한 번 보고, 머리 위의 천사링 반짝반짝 닦다가도 한 번 보고, 가끔은 먼 거리가 답답해서 구름을 낮게 내린 적도 있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피 채널이랑 비슷한 거지. 그 이상으로 나가면 문제가 된다. 천사가, 그것도 큐피드가 사랑이라니. 1대 큐피드가 지 손에 금화살 박아서 프시케한테 첫눈에 반한 건 아직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업무 과실이었다. 그러니까 이 관심은 단순한 흥미일 뿐이라고 큐피드 정한은 생각했다. 교통비 천 원만 달라는 학생에게 칠천삼백 원 남은 자기 교통카드를 줘버리는 인간을 보고서, 저 바보가… 내 바보가 됐으면 좋겠다. 그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멘트가 실화야?"
"민규야."
어라, 방금 나 뭐라고 한 거지. 정한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하늘을 날던 새가 우연히 그 장면을 마주하고 날갯짓을 깜빡 잊어 똑 떨어졌다. 그때 정한은 오색 구름을 낮게 운전하고 있었는데, 인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 눈이, 눈이, 마주친 것… 강한 햇빛에 눈을 찡그린 인간이 재채기를 한 번 했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으로 가면 폭풍이 되듯이, 석민의 재채기가 흐트러짐 없이 하늘로, 정한의 속눈썹을 스치고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가서… 거센 소용돌이가 되었다. 바람에 휩싸여 흔들리다가 눈을 떠보니 정한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손에는 다듬다가 만 금화살이 살포시 박혀 있었으며, 괜찮으세요? 물으며 손을 내민 사람이 다름 아닌…
"석민이었다는 거지."
"질문 있습니다."
"민규 발언하세요."
"이석민이 아무리 바보라도 이 시나리오를 믿을까?"
"시나리오가 아니라니까."
정한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게 별안간 화보를 찍고 계신다. 이쯤이면 본인 스스로도 속이는 게 아닌가 싶다. 옆구리가 터진 소파에 드러눕다시피 기대 앉은 승철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로 손을 들었다.
"그래서 뭐, 도와달라고?"
"아니? 그냥 알고 있으라고."
"뭐 선전포고… 이런 건 아니지 설마."
"에이~"
쏟아지는 질문에도 정한은 선선히 웃었다.
"할 필요가 없지."
"무슨 자신감이지 이거?"
"배포 합격."
좌중이 일순 술렁였다. 정한의 말투가 굳이, 라는 쪽에 가까웠기 때문이고, 선전포고씩이나 받아야 하냐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 한때 길었던 머리카락의 여파로 아직까지 남아있는 버릇 탓에 머리를 귀 뒤로 넘긴 정한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름답잖아."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는 게 모인 사람들의 울분으로 남았다.
Chapter 3. 조작단?
"근데 안 온 애들 뭐야."
"뭐… 각자의 이유가 있지."
권순영과 부승관은 거짓말을 시킬 수도 없을 뿐더러 이석민과 가까워서 오히려 위험해서, 문준휘는 이상하게 삐걱거릴 것 같아서 못 불렀다. 전원우는 게임 한다고 안 왔고. 최승철은 안 부르면 삐지니까 불렀지만…
"민규는 부른 적 없는데."
"엥?"
"민규 왜 왔어?"
"너, 서명호, 명호가 오라고 했는데. 근데 야 잠깐만. 나를 안 불렀다고?"
"왜 이렇게 서운해 해."
"좋아. 그래. 나를 안 불렀다고 치자는 거야."
"안 불렀다고 치는 게 아니라 안 불렀어."
"알겠다고. 근데 쟬 불러?"
민규가 손가락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박힌 곳에 옛날 얘기 듣듯이 눈을 껌뻑이는 한 사람, 이야기의 또 다른 당사자 이석민이었다. 쟤가 왜 저기에 있지? 석민의 손에서 펜이 반 바퀴 돌다가 말았다. 벽에 찰싹 붙은 승철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빽 소리쳤다.
"언제 왔어?!"
"처음부터."
"야 너는 거기에 있었으면 말을 해야지…!"
"어, 근데 정한이 형이 가만히 있으래서."
"윤정한이 시키는 대로 다 하냐?"
"시켰으니까 하지."
그건 또 맞는 말이다. 부르는 놈이나 부른다고 오는 놈이나. 석민은 속도 모르고 이제 발견했냐며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근데 아까 윤정한이 뭐라고 했더라. 구름 위에서 떨어졌다. 이건 그렇다고 치고. 나는 큐피드다. 말같지도 않은 소리 집어치우고. 내가 석민이를 좋아한다. 이거 괜찮은 거냐? 한 술 더 떠서 석민의 옆자리로 옮긴 정한이 상냥한 얼굴로 물었다.
"석민이는 어떻게 생각해?"
"어떤 거? 지금 얘기?"
"응."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듣고 보니까 우리 되게 묘하다."
"그런가?"
그런가? 그렇겠냐? 저렇게 대놓고 말했는데 이석민도 민망해서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극강 헤테로남의 귀에는 일종의 필터라도 들어있는 건지 면전에서 고백을 들었음에도 그의 얼굴은 마냥 순수하고 해맑았다.
"자랑해도 돼? 정한이 형이 나 좋아한다고."
"그러엄."
"아싸."
이쯤 되면 기약 없는 윤정한의 연애사가 살짝 불쌍해진다. 애정 전선의 당사자 1은 범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람이라, 개의치 않고 석민의 어깨에 팔을 척 올리며 그를 끌어당겼다.
"석민이 누구 바보~?"
"정한이 형 바보~"
"누가 승관이랑 순영이 좀 좀 불러와라."
"하하. 개판이네."
랩탑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한 지수가 레포트의 엔터를 경쾌하게 쳤다. 역시 경영학과의 디즈니 프린스. 아무리 개판이 나도 노래 한 소절로 이겨낼 수 있는 기량을 가진 사람이었다. 한 술 더 떠서 정한은 도겸의 목덜미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면서, 너 오늘도 베이비 파우더 향 나네, 오늘도? 석민은 목덜미를 살짝 쓰다듬으면서 그래애? 했다.
"야. 해산해, 해산. 우리가 있을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뭐라고?"
"빽하라고."
이제는 무슨 영화를 보러가네 연극을 보러가네 지들끼리 약속을 잡고 앉은 정한과 석민을 두고 남은 사람들은 주섬주섬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그러면 천사는 화살 박히기 전부터 좋아한 거 아니야?"
"맞지."
"근데 나 형 처음 봤을 때 진짜 천사 같다고 생각하기는 했어."
"나도 우리가 운명 같다고 생각했어."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윤정한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으니 저렇게 말하는 건 일부러다. 일부러가 아니라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 나쁠 것 같았다.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데, 아니, 그의 주장대로라면 또 다른 전설로 남을 업무 과실 큐피드도 바보로 만드는 거겠지. 열 번 두드려도 안 열린다면 윤정한은 문 곁에 앉아서 문이 삭아 빠질 때까지 말을 걸 테니까 누가 이길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어쩌다보니 그 은유적인 염병천병의 공간에서 가장 늦게, 영화 보고 밥 먹고 카페 가자는 흔한 데이트 코스 루트를 다 짠 윤정한과 이석민 커플과 함께 나가게 된 민규와 명호는 최대한 모르는 사람들인 척 멀찍이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근데 쟤네 오늘 똑같은 옷 입은 거니? 세간에서 말하는 커플룩, 그런 거. 알려주지 마. 알고 싶지 않아. 석민을 툭 치면서 근사하게 웃는 정한을 가만히 바라보던 민규가 눈을 비볐다. 어, 어라. 이건 하늘의 햇빛이 너무 눈부신 탓인가, 아니라면 뭐가 들어간 건가. 눈을 문지르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야, 명호야. 내 뺨 좀 때려봐."
"그런 취향 있어?"
"아니, 아 빨리이!"
명호가 질색팔색을 하며 민규의 뺨따귀를 슬쩍 밀었다. 친 게 아니라 저리 가라는 것 같은 사인이었다. 문제는 서명호의 힘이 김민규에게는 원래도 피죽도 못 먹은 사람의 마지막 근력이라는 느낌이라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더더욱 구분할 수 없었다는 거다. 아니 명호야. 나 진짜 몸보신 좀 해야 하나봐. 윤정한 뒤에 보이는 저거 날개야? 아니지? 에이 설마…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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