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elstrom

-

2022 JH&DK Collaboration

울게하소서
데렁








안나 수녀님께





편지를 받고 놀라실 모습이 눈에 선해요. 저도 펜을 든 지 오래되어 글자를 쓰는 게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갑자기 편지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에요. 그 전부터 언젠가는 수녀님께 소식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다만 안부 편지를 부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낱낱이 고해하는 것도 그렇지만, 수녀님은 언제나 바깥으로 나간 사람들의 얘기를 싫어하셨으니까요.

어쨌거나 마침내, 슬프게도, 그리고 기쁘게도, 꼬박 3년 만에 수녀님께 말씀드릴 일이 생겼어요.

아, 철거 소식은 보름 전에 들었어요. 건물이 붕괴되지 않고 철거된다니. 솔직히 수녀님도 신기하지 않으세요? 저는 그 안에 사는 내내, 언젠가 건물에 깔려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미로같이 늘어진 좁은 복도를 걸을 때는 늘 그런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그 때는 죽음이 별 것 아니었어요. 악취 나는 비좁은 방구석에서 삶이나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았을 리도 없고요.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온갖 이유로 죽었어요. 마약 중독, 크고 작은 질병, 집단 구타, 자살……. 정육된 짐승 사체만도 못한 말로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주쳤어요. 그러나 무감각했어요. 사람으로서 응당 느껴야하는 불쾌감이나 연민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때의 저도 죽어있던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겠죠. 이렇게 말하면 저를 혼내실 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알아요. 성당의 구석진 방, 볕도 들지 않는 곳에서 울음도 없이 죽어가던 갓난아이를 살리기 위해 수녀님이 감수해야했던 사람들의 핍박이나 시선을요. 또, 때론 엄하긴 했지만, 언제나 저를 지극정성으로 키우셨다는 것을요.

그러나 저는 살아있고자 하는 의지도 없이 살려져있었어요. 매일같이 미사 준비를 돕고, 성당 허드렛일을 하고, 저보다 어린 애들을 돌보며 지냈지만 주님의 은총이나 삶의 황홀함, 사랑의 신비는 경험하지 못했어요. 기껏해야 옥상에서 느긋이 햇볕을 쬐는 게 가장 덜 우울한 경험이었습니다. 벅차오른 적이 없으니 제 안에 영혼이 존재하는지도 알지 못했어요.

그렇게 죽음에 무디던 많은 날 속에서, 저는 한 남자를 보았어요. 저녁식사 심부름을 하던 중이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죠. 남자의 표정은 거만했지만 납득이 가는 외형이었어요. 입은 옷, 머릿결이나 피부 같은 것들이 잘 정돈되어있었고, 아주 순결해 고귀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순백색으로 칠해진 마리아상을 보고도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생각해보세요. 보잘 것 없는 식재료가게 맞은편, 난잡하기 이를 데 없는 좁은 사창가 골목에 그런 이가 나타난다면 누구라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겠어요?

저는 밀가루와 설탕을 사들고 나와 가게 앞에서 그 남자를 한참 주시했어요. 남자는 어린 여자들과, 마담들, 그리고 사창가를 지키는 덩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간 무언가를 얘기하는 듯 했어요.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가게 주인이 나와선 수녀님께 밀고하지 않을 테니 고민 말고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매춘에 관심이 있는 줄로 착각한 모양이었어요. 오해를 사기 싫어 곧바로 말을 돌렸죠. “저 남자 누구에요?” 손짓하며 물으니 주인은 화들짝 놀라면서 뻗어진 제 팔을 급하게 끌어내렸어요.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남자는 정부의 압박에 의해 공식적으론 물러났으나 암암리에 그곳의 하수구 쥐떼까지 지배하던 조직과 관련이 있었어요. 어쩐지. 마르고 왜소한 남자에게 모두가 굽실대는 것이 이상했더랬죠. 미리 알았다면 그에게 손가락질 하는 무례는 저지르지 않았을 테지만 이미 상황은 지나갔고 뭐 어쩔 수 있겠어요. 며칠 밤 두려움에 떨며 뜬 눈으로 보낼 수밖에요.

그럼에도 그 남자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어요. 단순한 호기심은 아니었어요. 저는 일종의 선망과 비슷한 감정으로, 어떠한 열망에 사로잡힌 채 그에 대해 조심스레 묻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를테면 그의 이름, 나이, 소문 같은 것들을요.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대답했어요. 도무지 뭐가 맞고 틀린지 알 수 없었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늘어가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재미있었고요. 나중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을 추려낼 수 있었으니 아주 소득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다시 마주치게 되었어요. 그는 볕이 들지 않는 골목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어요. 희한하게도 그땐 풍경 속에 녹아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온통 이질적이던 첫인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관심이 없었다면 거리의 부랑자라 여기고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어요.

그러나 저는 그를 단 번에 알아봤고, 무방비한 자태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어요. 어쩌면 가까이 갈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저는 자연스럽게 그와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섰어요. 마침 노숙자 몇몇이 모여 있어 이상하지 않을 거라 여겼습니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아닌 척 남자를 힐끔댔어요. 겨우 동그란 머리, 그 가운데 나있는 가마의 모양, 작은 바람에도 가냘프게 나부끼는 가느다란 머리카락과 하얀 뒷목 따위를 보며 서성였어요.

그러던 어느 순간 시선을 느낀 건지 그가 저를 향해 고개를 돌렸어요. 우린 눈이 마주쳤고, 그와 동시에 남자가 저를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었어요. 연기가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매캐함은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나 명백히 위압적인 행동인지라 조금 긴장이 됐습니다.

남자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퉤 뱉었어요. 그리곤 말했죠.

“네가 요즘 나한테 관심이 많은 애구나.”

나긋한 목소리와 말투가 저를 부드럽게 하대했어요. 기분 나쁘진 않았어요.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졌어요. 그러나 그가 제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운 나머지 이상한 표정을 지었어요. 이내 남자는 저에게 옆에 와서 앉으라고 눈짓했어요. 손으로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고요.

저는 머뭇대며 그에게 다가갔어요.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남자의 옆 얼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흉터 하나 없는 산뜻한 피부와 콧대, 약간 처진 속눈썹, 얇은 입술 모양은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지도 몰라요.

그는 불붙은 담배를 몇 번이고 깊이 들이쉬고 뱉었어요. 그러다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조용히 물었어요.

“사람들을 믿니?”

초면에 나눌 대화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저는 성의껏 “글쎄요. 어떨 때는요.” 하고 대답했어요. 진심이었어요. 제 대답에 남자는 저를 마주보더니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리곤 한참만에 입을 열었어요.

“이제부터는 나를 믿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은 믿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다보면 종종 이 얘길 꺼내게 되는데, 하나같이 반응이 똑같아요. 다들 첫눈에 반해 그 남자를 덥썩 믿은 거냐며 저를 놀려댑니다. 그러니 수녀님께선 혹시나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참아주세요. 싫지는 않지만 꽤나 쑥쓰럽고, 그때 저는 제가 그런 줄도 몰랐으니까요.

그날 윤은 자신의 이름, 나이, 출신지 같은 것들을 알려주었어요. 대략적으로는 사람들이 말해준 것과 비슷했어요. 그러나 본인에게 직접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컸어요.

윤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쏟아낸 것은 아니에요. 그런 식의 뻘쭘한 자기소개는 결코 아니었어요. 윤은 타고나길 타인과의 관계에 능수능란했어요. 저도 어느새 같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니 말 다 했죠. 오고가는 대화 속에 사소한 정보들이 녹아있었고, 윤은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새기었어요. 무방비한 것은 그가 아니라 저였습니다.

마지막 한 개비는 두 모금 씩 나눠 피웠는데, 윤은 그제야 제가 제일 궁금해 하던 것을 알려주었어요.

수요일과 목요일, 다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 식재료가게 맞은편, 좁은 사창가 골목에 자신이 언제 들르는 지를요. 그는 제 귓가에 바짝 붙어 담배 연기인지 숨인지 모를 것을 살살 뱉어내며 낮게 속삭였어요. 은밀한 목소리에 순간 몽정이라도 한 듯이 진이 다 빠졌어요.

고작 이름, 나이, 출신지, 작업 시간 따위를 들었을 뿐인데, 그땐 그게 무슨 대단한 말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성당으로 돌아온 후에도 줄곧 여운에 잠겨있었어요. 침대에 누워 짧은 만남을 곱씹다보면 그를 보는 것이 간절해졌고, 금방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진정하기 위해 성당 뒤뜰을 서성였지만 해결되지는 않았어요. 미사를 보며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간청했지만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고, 또한 누구의 재촉에도 꿈쩍하지 않으니 그 일관된 잔인함에 숨이 턱턱 막혔답니다.

괴로운 며칠이 지나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성당을 박차고 나왔어요. 심부름을 가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어요. 노을이 지기 직전의 하늘은 애매한 빛을 띄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탁 트인 하늘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복잡한 길을 지나 익숙한 골목에 들어서자 한 켠에 윤이 보였어요. 그는 냉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다 문득 저를 발견했고, 일순간 표정을 풀며 올 줄 알았다는 듯 나른히 웃었어요.

새파랗던 눈빛에 사랑스러운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처음으로 살아있음을 실감했어요. 골목을 지나는 느린 바람, 군데군데 내리쬐는 기다란 햇빛, 딛고 서있는 차갑고 딱딱한 바닥 같은 것들이 제대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감각은 떠오르는 태양이나, 배고픈 아이의 울음처럼 폭발적으로 저를 집어삼키지는 않았으나,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벅찼어요. 다만 새벽녘 풀벌레 소리처럼 은은히, 그리고 서서히 사방에서 저를 죄여왔어요.

저는 이틀 내내 자연스레 윤과 동행했고, 윤은 사람들에게 저를 소개시켰어요. 거창한 소개는 없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그때 서로를 잘 몰랐어요. 대신 윤은 아주 짧은 말을 반복했는데, 사람들은 그 한마디에 다들 경계를 풀고 저에게 살가워졌어요.

저로서는 기가 찼죠. 윤은 겨우, ‘나랑 같이 온 애야.’라고 말했을 뿐이니까요. 그러나 그 말 한마디에 저는 가게의 장부까지 볼 수 있었는데, 그건 순전히 윤이 저를 제지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개뿔 알지도 못하는 회계장부를 이해해 보려 눈살을 찌푸렸어요. 단순히 수녀님이 제게 가르친 글자를 기도문이 아닌 다른 글을 읽는 것에 사용함에 열중했을 뿐이었는데 마담들은 왠지 초조해하기 시작했어요. 윤은 그 꼴이 우스웠는지 이따금씩 픽픽 웃었어요.

온통 낯선 사람에, 눈 뜨고도 못 읽는 서류에, 즐거울 일이 하나 없는데도 내내 들떠있었어요. 지루한 성당 일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이 났지만, 무엇보다 윤이 저를 특별대우 해주는 것에 기분이 좋았어요. 게다가 윤은 일이 끝난 뒤, 만류에도 불구하고 저를 성당 앞마당까지 직접 데려다 주었어요. 말로는 밤에 혼자 다니면 위험하니 같이 가주겠다는 핑계를 댔는데, 그냥 제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오픈했으니 그 정도는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노골적으로 성당 시설을 훑어보던 윤은 저에게 불쑥, “다음 주에도 보자”고 말했어요. 그때 말투는 듣던 중 가장 부드럽고 상냥했어요. 기다림에 비해  이틀의 시간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탓에, 또 그런 말투에는 면역이 없던 탓에 저는 홀랑 알겠다고 대답했죠.

한참 나중에, 함께 야반도주를 한 이후 눈만 마주치면 싸우던 시절에 충동적으로 윤에게 물어봤었는데, 일부러 잘해준 게 맞다고 했어요. 이때만 생각하면 정말 괘씸해 죽겠어요. 말하던 뒷모습이 가볍게 나풀댔거든요. 그는 망설임 없던 제 대답에 기분이 좋았던 거죠.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저는 꼬박꼬박 윤을 만나러 갔고, 윤은 일이 끝나면 항상 저를 데려다주었어요. 늦은 시간 텅 빈 거리에서 나누는 대화는 적당히 비관적이었고, 적당히 희망적이었고, 적당히 웃겼고, 적당히 끊겼어요. 그게 참 좋았어요. 아시다시피 그곳엔 혓바닥과 머릿속이 넝마 같은 사람들이 천지잖아요.

더군다나 나이터울도 적어 서로에게 빠르게 적응했어요. 여기엔 필사적이었다는 표현이 어울리겠어요. 윤이나 저나 또래 남자들과는 영 인연이 없어 서로가 거의 유일했거든요.

함께하는 날이 많아진 이후 윤이 사창가에 나오지 않는 날에도 종종 약속을 잡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언젠가부터 터무니없는 명분을 만들어 외출하던 것을 수녀님은 기억하실 테죠.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방황이 조금 늦게 왔다 생각하셨을까요.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일을 하지 않을 때의 그는 튀지 않는 헐은 옷을 입었고, 성격마저 많이 누그러져 사근사근한 느낌을 주었어요.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으나 금방 적응했어요. 아세요? 바깥엔 윤 같은 사람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요. 이웃들은 생각보다 다정하고 친절하다는 것을요. 아무래도 윤은 이런 것에 저를 적응시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서로의 대화 방식이나 자주 쓰는 말버릇, 심지어는 작은 거짓이나 침묵에도 익숙해졌을 즈음. 하루는 윤이 이런 말을 했어요.

“여기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래서 외로워.”

저는 조금 놀랐어요. 언뜻 언뜻 속마음을 내비치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우리가 공유하던 ‘적당히’를 지나쳤어요. 게다가 윤은 말할 때 말투만 꾸미면 된다고 착각하곤 해서, 때때로 목소리나 표정을 잘 못 숨겼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시답잖은 일로 크게 싸울 때, 감정에 못 이겨 저를 한껏 비아냥대면 대면서도 제가 떠날까봐 두려워 목소리가 떨리곤 해요. 그 말은 들은 제가 화가 나 집을 나가겠다고 하면 너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떵떵대지만 표정은 풀이 죽어있고요.

그때도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처럼 가벼운 말투를 사용했지만 목소리가 무척 쓸쓸했어요.

수녀님. 사람은 본디 자신의 나약함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다른 이의 나약함을 책임지고 싶어 합니다. 저는 갑자기 윤이 안쓰러웠고, 어떤 말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어요. 그러나 윤은 이미 다른 주제를 말하고 있었어요.

그날 윤은 오랫동안 말을 멈추지 않았어요. 수다스럽게 짹짹댄 것은 아마 투정을 부린 게 민망해서 그랬을 거예요. 저는 그저 맞장구를 치거나 했어요. 그의 외로움을 물고 늘어지는 것 보다, 여느 때처럼 ‘적당히’ 반응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면서 저는 윤의 외로움을 이해하기 위해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떼쓰는 어린애들 울음소리와, 평소엔 묵묵한 노년의 신자들이 목을 긁으며 성가를 부르는 소리, 구걸하는 거지들이 내지르는 고함 같은 소리들이 귓가에 아른댔어요. 너무 많은 타인과 반복되는 일상. 끔찍하게 지루했어요.

저는 외로움과 지루함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곁에 있는데 공허했거든요. 짜증스럽기도 했고요. 아무튼 이후로 윤은 매일 성당으로 저를 데리러 왔어요. 다행스럽게도 제가 보여준 적당한 반응이 마음에 무척 들었던 모양이에요.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요.

윤이 처음으로 저를 찾아왔을 때, 저는 설거지를 하려던 참이었어요. 큰 대야에 지저분한 식기가 가득이었고, 앞치마까지 하고 있었어요. 윤은 까치발을 들고 성당 담벼락 너머로 눈만 빼꼼 내밀고 저를 쳐다봤어요. 한동안 조용히 시선만을 던지다가 제가 죽어도 알아채지 못하자 작게 저를 불렀어요. 그거 다 하면 잠깐 놀러가자고 하면서요.

그 날 우리는 윤이 찾아둔 아파트 옥상을 아지트로 삼고 그곳에 돗자리와 플라스틱 의자, 작은 평상을 가져다 두었어요. 평상 아래엔 책이나 신문을, 위엔 키우기 쉬운 작은 화분도 들여놓았고요. 노는 것 보다는 일 한 것에 가까웠지만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게 그저 즐거웠어요.

아지트를 만든 뒤로는 줄곧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윤과 어울리기 위해 자리를 비운 숱한 저녁이 수녀님께 모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어요. 윤이 어딘가에 앉아서, 혹은 누워서 조용히 말을 하는 동안 저는 이런 저런 대꾸를 하며 화분에 물을 주고, 돗자리를 털고, 마른 수건으로 의자를 닦았어요. 윤은 사소한 일을 하는 것엔 서툴러서 공간을 가꾸는 것은 모두 제 몫이었어요. 불만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평상에 나란히 누워 떠들다 보면 자주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처음엔 자각조차 어려워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는데, 윤이 어물쩍 시선을 돌린 뒤로는 저도 그를 따라 기분이 이상할 때 마다 시선을 돌렸어요. 우리는 서로를 오래 마주보지 못하는 대신 하늘이나, 주변 풍경을 보면서 대화했어요. 그럼에도 가끔은 계속 그를 보고 싶다는 충동을 견디기 어려웠어요.

해가 질 때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 창문에 비친 노을이 꼭 거대한 주홍빛 바다 같이 느껴졌어요. 짠내가 하나도 나지 않는, 그러나 언제든 나를 덮칠 것만 같은 그런 바다요. 이따금 낮게 나는 비행기가 노을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면 퍽 낭만적인 기분이 들었어요. 그림자가 졌던 윤의 얼굴에 다시금 붉은 빛이 차오르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거든요. 너무 순식간이라 아쉽기도 했고요.

사춘기의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수녀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듯, 저는 방황했어요. 마침 비행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찰나를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저는 성당으로 돌아가는 대신 평상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윤의 곁에 앉았어요. 윤은 기척을 느꼈음에도 자는 척을 했습니다. 이내 그림자가 졌다가, 다시 노을이 비쳤어요.

저는 바다가 삼킨 윤의 이마부터 눈썹뼈, 콧대와 뺨을 지나 입술까지를 손으로 조심스레 쓸어내렸습니다. 그때의 윤은 가만히 눈을 감고 저의 손길을 받아주었어요. 마침내 손이 턱에 다다라 멈추었을 때, 윤은 눈을 천천히 뜨며 제 손목을 붙잡았어요. 떨어지지 말라는 듯이 그러쥐고는 저를 올려다 보며 입술을 벌렸어요.

그는 느릿하게 저를 집어삼켰어요. 시선은 올곧았고, 미지근한 혀와 단단한 입천장, 작게 힘이 들어간 말랑한 입술이 손가락의 끝마디부터 뿌리까지를 전부 옭아맸어요. 생경한 느낌으로 젖어가는 손가락을 천천히 빼내었는데, 다물린 입술 사이로 손톱의 모양이 보일 쯤 다시 그의 입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싶은 욕망이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몸을 숙여 그의 양 뺨 옆에 손을 짚고 고개를 숙였어요. 그때의 기분은 명료했어요. 누군가의 찰나를 간직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니까요.

제가 다가가자 윤은 눈을 반쯤 감고 턱을 치켜들었어요. 아주 가까이서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입술을 맞대었습니다. 이내 틈새가 벌어졌고, 윤이 저의 뒷목을 감싸 안았어요. 망설임 없이 서로에게 깊숙이 파고 들었어요.

아무도 우리를 보지 않는 것 같았어요. 주변이 그렇게나 시끄러운데도, 그 때는 정말로 오직 서로의 숨소리만이 들렸어요. 믿겨지세요? 저는 한참이나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어딘가로 빠져드는 황홀함을 만끽했어요.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새카맣게 잊어버렸고요.

황홀함. 사랑의 신비. 저는 그날 모든 것을 실감했어요. 마침내 입술이 떨어지고 윤의 눈을 마주했을 때엔, 어쩌면 주님의 은총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벅차게도 그의 눈동자엔 온통 저만이 담겨있었거든요.

이쯤 되면 눈치 채셨을 테죠. 맞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일언반구도 없이 외박을 한 날의 일입니다. 걱정하실까봐 말씀드리자면 내내 바깥에 있던 것은 아니에요. 해가 지면 거리는 더욱 엉망이 된다는 걸 둘 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첫 입맞춤이 끝난 후 윤은 잠시간 숨을 고른 뒤 저에게 자신의 집으로 같이 가겠냐고 물었어요. 그곳은 정말로 둘 뿐이었어요. 시끄러운 잡음이나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는 깔끔한 작은 아파트. 저는 이곳에 이렇게 깨끗한 집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윤을 쳐다보았고, 윤은 익숙하게 저를 이끌었어요.

우리가 조용해졌을 때는 이미 어슴푸레하게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좁지만 편한 침대에 누워 윤의 머리를 매만지자 윤은 제 어깨에 고개를 묻고 가쁜 숨을 쉬었어요. 겹쳐진 체온은 쉬이 식지 않았지만 저는 애써 몸을 일으켰어요. 밖이 밝아지기 전에 성당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며 옷을 챙겨 입는데, 윤이 그랬어요.

“가고 싶은 거야? 아니면 가야하는 거야?”

저는 가야한다고 말했어요. 돌연 눈앞에 밥 달라고 떼쓰는 보육원 아이들과 홀로 고군분투하는 수녀님 얼굴이 아른댔거든요.

제 대답에 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당시 저는 윤이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윤은 그저 어떤 생각에 잠긴 듯이 끈질기게 제 모습을 쫓아 눈동자를 움직일 뿐, 제가 옷을 다 입고 현관을 나설 때까지 어떤 말도 하지 않았어요.

수녀님. 그때 수녀님께서 저를 혼내셨다면 제가 계속 그곳에 남았을까요? 저는 아직도 성당 앞마당에서 홀로 아침 준비를 하시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잔뜩 긴장한 저를 엄하게 꾸짖는 대신 무사히 왔으면 되었다고 말씀하시던 음성도요.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생각이었는데, 사실은 죄도, 용서를 구할 일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모든 게 괜찮은 것 같았거든요.

수녀님의 후회를 부추기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철없던 생각일 뿐입니다. 당시 제 걱정으로 밤을 새우신 나머지 종일 피곤해하신 것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의 저는 편안히 잠에 듭니다. 그곳에 남았다면 많은 사람을 미워했을 거예요. 수녀님도, 이웃도, 아이들도, 심지어는 주님도요.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군요.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그 뒤로 윤은 일주일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요. 첫날엔 바쁜 일이 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많이 바빴으니까요. 식재료가게 앞 골목뿐만 아니라, 그 일대에 조직이 소유한 거의 모든 가게를 관리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인내심을 가지고 시간을 보냈답니다.

그러나 사흘 째 부터는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식료품가게로 심부름을 갔는데도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거든요. 꼭 있어야 할 곳에도 보이지 않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아지트에도 들러보았지만, 아지트는 그는 물론이거니와 누군가 다녀간 흔적조차 없이 제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 그대로였어요. 저는 싸늘한 공간을 두서없이 둘러보다 순식간에 무척이나 심란해졌어요. 아직도 그때 성당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의 부재를 확인하자 잠이 오지 않았어요.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밤새 끙끙 앓았어요. 매일 그를 만나는 것이 습관이 된 탓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밤을 같이 보낸 직후여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사랑을 느꼈던 순간이 자꾸만 저를 찌르는 것 같았고, 결국엔 소박맞은 심정으로 아침을 맞았어요. 돌이켜보면 우습지만 새벽이란 본디 사람을 속절없이 근심케 하잖아요.

나흘째부터 혹시 윤의 물음에 가야 한다고 말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성당으로 돌아오는 대신 그의 곁에 있어야 했을까? 엉뚱한 후회를 하기 시작했어요. 낮에는 얼이 빠진 채 멍을 때리기 일쑤였고, 밤에는 성당 뒷마당을 서성대며 그가 나를 지켜보던 담벼락을 하염없이 쳐다보았어요.

윤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보았던 걸까. 찰나 같던 순간들을 끝없이 돌이켜보며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나 알 수는 없었어요. 저는 윤에게 무언가 물었던 적이 없었거든요. 그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기뻤기 때문에 순진하게 굴었어요. 맞아요. 저는 너무 순진했습니다.

말을 하기에 앞서, 수녀님. 사랑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임을 알아주십시오. 사랑 앞에 용감해지는 것은 용기 때문이 아니라 알고자 하는 본능 때문임을 기억해주십시오. 사랑 앞에 무력해지고 싶지 않은 발악임을 새겨주십시오.

엿새날 밤, 그러니까 그가 모습을 감춘지 꼬박 일주일이 되던 새벽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세상에 철저히 혼자인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모든 것이 그와 입맞춤을 할 때 느낀 것과 정반대인 끔찍한 기분이요. 의욕을 잃어 수녀님이 시킨 일도 제때 다 하지 못해서 늦게나마 마른 빨래들을 걷고 있었어요. 머릿속이 텅 빈 나머지 빨리 하고 자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서 그저 느린 동작으로 천천히 움직였어요.

빨래바구니가 중간 쯤 찼을 때였습니다. 인기척이 들렸어요. 저는 소리를 듣고도 무시했습니다. 빨래를 걷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그렇게 다음 빨래를 걷기 위해 손을 뻗었는데, 다시 인기척이 들렸어요. 성당의 담벼락을 손바닥으로 다급히 치는 소리였습니다.

끈질긴 소리에 저는 결국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몸을 돌렸습니다. 누군가 담벼락에 상체를 반만 걸치고 안쪽 벽면을 두드리고 있었어요. 저를 뚫어져라 응시하면서요.

상상해보면 제법 무서운 장면일지도 모르겠으나, 전혀 겁이 나지 않았어요.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는 단 번에 그게 윤임을 알아차렸거든요. 그는 귀엽게도 본인이 저를 지켜보던 곳에서 저를 부르고 있었어요.

빨래 바구니를 내던지고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나른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어요. 바짝 다가서자 그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근방에서 나는 불쾌하고 더러운 냄새는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그을린 듯 한 냄새였어요. 의아했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고백하자면 저는 그에게 원망보다 반가움을 더 먼저 느끼고 있었습니다. 실망이나 분노 보다는 환희를 느꼈고요. 잠들지 않고 깨어있던 것이 다행이라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그가 나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다시금 말하지만 저는 순진했어요.

한껏 상기된 제가 말을 다듬기도 전에 윤이 입을 열었어요.

“석민아. 너 나를 믿니?”

사라진 것에 대한 사과도 없이 이런 말이라니! 지금 같았으면 대꾸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저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윤이 환하게 웃었어요.

“나도 너를 믿어.”

그리고는 제 쪽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같이 가자.”

아, 정말이지 능수능란했다니까요. 저는 순식간에 그를 믿는다는 제 말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습니다. 더군다나 그도 저를 믿는다니 망설일 수가 없었어요.

저는 일단 그의 손을 잡았어요. 성당 정문이 잠겨있기 때문에 어디를 가려면 담을 넘는 수밖에는 없었으니까요. 힘을 주어 벽을 짚고 다리를 넘기면서는 여태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밖으로 나오자 윤은 지체 없이 제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어요.

기껏해야 아지트에 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는 아지트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고 열심히 뛰었어요. 저는 뒤늦게 윤을 향해 어디로 가는 건지, 왜 일주일 동안 오지 않았는지, 여태 어디에 있었는지 등을 물었어요. 윤은 대답 없이 뛰기만 했습니다. 저도 숨이 차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고요.

쉼 없이 달려 도착한 곳은 한적한 도시 외곽이었어요.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윤은 숨을 고르며 높은 외벽을 더듬대더니 마침내 무언가를 찾은 듯 탄성을 터트렸어요. 그리곤 고개를 숙여 바닥 쪽을 손으로 밀어냈어요.

땅 아래 묻혀있던 판자 같은 것이 밀리더니 개구멍이 나타났습니다.

“이게 뭐야?”

제가 묻자 윤은 비밀스럽게 말했습니다.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

저는 스산한 기운이 도는 검은 구멍을 보며 윤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걸 보여주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건가? 일주일동안 이걸 찾아다닌 건가? 아니면 본인이 만들었나? 사실 이런 통로가 있다는 것만으로 놀랄 일이어서 더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윤은 저를 보고 구멍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가자.”

“어디를?”

저는 알면서도 물었어요. 왜냐하면 바깥은…….

“모르겠어. 그냥 일단 나가서 생각해 보려고.”

여유로운 척을 하지만 윤도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제가 망설이자 윤은 곧바로 말을 이었어요.

“나 시간이 없어.”

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동이 트려면 적어도 네 시간은 더 있어야 했어요. 주변이 밝아져 사람들이 우리를 발견하는 일은, 적어도 당분간은 일어나지 않을 게 확실했습니다. 그렇지만 윤은 한 번 더 저를 재촉했어요.

“나랑 같이 갈 거지?”

윤은 망설일 시간도 줄 수 없는지 대답도 듣지 않고 먼저 개구멍으로 들어갔어요.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에 덜컥 겁이 났습니다.

수녀님. 저는 알 수 없음에 무력했던 지날 시간을 떠올리며 눈을 세게 감았습니다. 곧 무엇인가 아득했어요. 그를 따라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거든요.

그러자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이 순간에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만이 명확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새벽녘 천사가 다가와 신의 아이를 잉태하게 될 것이라 일렀을 때 성모께서도 그런 심정이셨을까요?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모독적이게도 저는 성모께서 하신 말씀을 몇 번이고 되뇌며 몸을 낮추었어요. 제가 따라 들어온 것을 확인한 그는 개구멍이 보이지 않도록 판자를 닫아두라고 했습니다.

저를 믿는다는 남자를 믿으며 칠흑 같이 어두운 터널을 기고 또 기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윤이 멈춰 섰습니다. 그는 천장 쪽을 툭툭 건들이더니 자세를 바꾸어 발로 힘차게 무언가를 찼어요. 출구였습니다.

먼저 올라간 윤이 저에게 손을 뻗었어요. 저는 그 손을 잡고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았고, 그곳은 정말로 바깥이었어요. 가로수가 정돈된 큰 대로변, 번쩍이는 신호등,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있는 바깥이요.

윤은 안심이 되지 않는지 다시 뛰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확실히 속도가 느렸어요. 저는 가뿐히 그를 따라 뛰었어요. 그리고 큰 도심에서 벗어나 어떤 골목에 들어섰을 때 그는 발걸음을 완전히 늦춰 걸었어요. 좁고 평화로운 골목에 알맞은 걸음걸이였어요.

도착한 곳은 허름한 2층집이었습니다. 대문을 연 윤은 제가 따라 들어오는지 확인하며 계단을 올랐어요. 중간에 놓인 화분 아래서 열쇠를 찾은 그는 과감하게 2층의 현관을 열었어요.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이 곳이 윤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윤의 집과 너무 비슷했거든요. 역시나 윤은 익숙하게 저를 이끌었고, 바깥에선 동이 트기 시작했어요. 돌아갈 수 있는 곳은 까마득했습니다. 아니, 까마득한 것이 아니라 아예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며칠 뒤에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영영 서로를 끌어안고 살아야한다는 것도요.

윤이 왜 저를 선택했는지는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윤이 저를 만나기 전 선택했던 사람들이 몇 명 된다는 사실도 같이 알게 됐어요. 그와 함께 산지 2년 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습니다. 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 이용해 먹었다는 사실을 용서하기 힘들었습니다. 더 솔직하게 고해하자면, 아무것도 모르고 그를 따랐던 게 너무 분해서 몇 대 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윤은 화를 내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된 일이야. 적어도 걔네들은 거기서 죽지는 않았으니까.”

동의합니다. 사창가에서 팔리다 불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보다는, 윤의 도움을 받아 바깥으로 나와서 어떻게든 살다가 사라지는 것이 나은 일이니까요.

윤의 원래 계획은 선택한 사람을 먼저 밖으로 보내고, 그 사람이 정착하면 본인이 뒤따라 탈출하는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조직에서 탈출한 사람을 찾아내 다시 끌고 올 가능성이 있었고, 둘째로는 같이 탈출하면 단순히 매춘부가 도망간 사건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두 명을 내보낸 이후로는 감시가 살벌해져 정말 같이 갈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윤은 바깥에서 납치당해 팔려온 사람들을 주로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밖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고, 이런 삶이 구닥다리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러나 그들은 윤의 도움을 받고 정착을 하면 홀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윤이 자신을 납치한 조직과 연관이 있는 것이 꺼림칙했던 모양이에요.

윤이 바깥 출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린 이유도 그 때문이었는데, 문제는 안쪽에서만 살다보면 그런 삶에 적응한 나머지 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윤은 한동안 계획을 포기한 채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고요.

그러다 제가 윤에 대해 묻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윤이 보기에 저는 적당히 호기심이 있었고, 성실했고, 해야 할 일을 할 줄 알았으며, 사람을 믿었습니다. 정확히는 윤을 믿었다고 해야겠죠. 저는 몇 번이나 사랑이라고 정정해주었는데, 윤은 사랑보다는 믿음에 더 값을 쳐주는 편이어서 먹히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도 저를 사랑하지만, 표현 방식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예외적으로 저와 함께 탈출한 이유는, 그 즈음에 매춘부들을 빼돌린 것을 들켰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확실하게 들킨 것은 아니지만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고 해요. 여기 저기 숨어 다니느라 저를 보러올 수도 없었고요. 그을린 냄새가 났던 이유도 증거가 남은 장부들을 불 태워서라고 들었습니다. 윤에게는 정말로 시간이 없었던 거죠. 저는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고요.

 어쨌거나 우리는 둘 다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았어요. 윤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았고, 저는 한동안 윤을 미워했으나 떠나지 않았으니까요. 이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였어요. 각자가 생각하는 위기가 달랐거든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윤이 저를 버리고 떠났다면, 그들이 어떻게든 윤과 어울리던 저를 찾아내 무슨 짓이라도 했을 거란 사실은 자명합니다. 성당에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녀님. 윤의 가족이 윤을 찾기 위해 수년 전 안쪽으로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모든 재산을 은행에 묶어두고 들어가 행색이 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마도 평범한 이웃의 모습을 하고 그 안에서 윤을 찾아다니고 있을 거예요.

그렇기에 염치없이 편지를 보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이제 거기서 제가 믿는 사람은 수녀님뿐입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가족들이 윤을 찾던 전단지와 윤에게 남아있던 가족사진을 같이 보냅니다. 혹시나 닮은 사람을 보신다면 이 주소로 연락해주시길 간청합니다.

더불어 부디 말없이 떠난 저를, 살아있다는 편지 한 줄 쓸 수 없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이제라도 편안히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작가님께 감상 보내기